강호 브라질에 3골을 퍼부은 밤비데 올로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2차리그 3조에만 쏠리고 있었다. 다른 3개조는 관심조차 끌지도 못했다. 3조의 첫 경기는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의 대결이었다. 1차리그에서의 졸전을 벌였떤 두 팀은 1차리그에서의 졸전처럼 경기를 진행했다. 2골을 잃은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퇴장당하고 주장 다니엘 파사렐라(Daniele Passarela,현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 가 멋있는 중거리포로 1점을 만회한데 그친 이 경기를 본 브라질 선수단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는 더이상 자신들의 적수가 못된다고 믿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결전을 시작한 브라질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얀 펠레'를 앞세운 브라질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2연속으로 폭파시키며 삼바춤을 추었고 삼바춤에 흥분(?)한 마라도나는 계속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급기야 자신들에게 과격한 반칙을 하는 브라질 선수에게 발로 복부를 차는 엄청난 짓을 저질러 또한번 퇴장을 당했다. 결국 퇴장당한 설움은 아르헨티나의 불행으로 이어졌고 3-1로 브라질이 승리한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축구 신동'으로 관심을 모았던 마라도나는 '버릇없는 신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브라질 앞에는 이탈리아만이 남아있었고, 브라질은 이탈리아를 <종이 호랑이>로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1982년 7월 5일 이탈리아와 브라질은 바르셀로나 살리 스타디움에서 마주했다. 브라질은 벌써 승리의 분위기에 빠져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눈물을 흘릴것을 암시하는 기쁨이었다. 그들은 절치부심, 칼을 갈고 이탈리아의 파울로 로씨(Paolo Rossi)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78년 월드컵에서 빼어난 기량을 선보였던 이탈리아의 로씨는 그러나 79년 이탈리아 세리에 A 의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2년간 선수 자격을 박탈당하는 뼈아픈 경험을 통하여 비장한 각오로 이번 대회를 임했던 것이다. 선수로서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그의 가슴에서 불타고 있었으며, 그 불꽃은 로시의 머리와 오른발에 쏠리고 있었다. 경기 시작 5분 자만심에 가득찬 브라질의 진영을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카브리니(Antonio Cabrini)가 돌파하기 시작했고 문전으로 올린 센터링은 파울로 로씨의 머리를 맞추며 그대로 브라질 골문을 흔들어버렸다. 브라질의 문전에는 4명의 브라질 수비수와 왜소한 로씨뿐이었는데도 로씨는 골을 성공시켰다. 브라질의 공격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지코의 패스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골키퍼 디노 조프(Dino Zoff,현 라치오 로마 클럽 사장)마저 농락하며 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수비의 헛점을 이용해 로씨가 2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다시 2-1 경기가 되자 경기는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번엔 다시 브라질의 반격이었다. 성난 용사 브라질의 팔카오(Falcao,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일본 대표팀 감독)가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으로 양팀의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팔카오의 동점골은 <승부의 불꽃에 불타는> 로씨의 헤트트릭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후반 30분, 코너킥이 이탈리아 선수의 발맞고 슛팅한볼을 카나리아 깃털에 휩싸인 로씨가 방향을 틀어놓아 헤트트릭을 기록한 것이다.
브라질의 자존심은 로씨라는 한 명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2년간이나 그라운드를 떠나 있음에도 최강 전력 브라질에게 헤트트릭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브라질로서는 월드컵에서 최초로 헤트트릭을 허용한 경기였다. 관중들의 입은 벌어졌다. 브라질이 탈락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뒷통수를 내리치는 충격이었던 것이다. 로씨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은 브라질은 경기가 끝나도 실감나지 않는듯, 그라운드에서 서성거렸다. 우승을 꿈꾸는 브라질의 악몽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까지 따라간다. 한편 파울로 로씨는 이 경기에서의 폭발적인 활약에 '밤비데 올로(태양의 아들)' 이란 별명을 얻는다.
한편 4강이 정해졌다. 폴란드-이탈리아, 서독-프랑스. 또다시 절묘한 명승부는 펼쳐진다.
1882. 7. 5
브라질 2 : 3 이탈리아
득점 : 소크라테스, 팔카오(이상 브라질), 로시 해트트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