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전 폴란드와의 대결에서 우리 아들들은 1:1 무승부를 기록,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크게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차기 대한민국 성인 대표팀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비단 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머리에 털나고 축구를 보아 온 이래 지금까지 이런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우리 대표팀을 본 적이 없다. 세밀한 패스웍과 개인기로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가며 찬스를 노리는 이런 축구를 하는 대표팀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측면에서 크로스도 어지간해서는 올리지 않았다. 거의 중앙 돌파를 통해 공격의 활로를 뚫으려 하는 이런 스타일의 축구는 안 그래도 윙어들의 좌절스러운 크로스에 고생하는 성인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수비수 두 세명을 줄줄이 달고 다니며 경쾌하게 드리블을 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여태 보아 왔던 우리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낯설면서도 어쩜 그리 신통해 보이는지... ^^ 유럽 2위로 본선에 진출한 폴란드와 남미 최강 브라질이 아시아 팀을 상대로 밀집 수비로 대응하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골결정력의 부재, 킬러의 부재 등을 언급하며 언론과 네티즌들이 매 대회 토너먼트 진출 실패할 때마다 예외없이 작년, 제작년에 떠들어댔던 이유를 지긋지긋하게 반복하며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며 나서고 있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없어도, 홍명보와 같은 수십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특급 수비수가 당장은 없더라도 앞으로 이런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세대들이 5년, 10년, 20년에 걸쳐 꾸준히 나와 준다고 생각을 한 번 해 보라. 이제 개천에서 진주를 찾는 수고를 덜 필요가 없어지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확실히 한국인은 축구에 재능이 있는 민족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맨땅에서 축구를 시작한 세대들로도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이룩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잠재력을 한껏 발산했던 우리 선수들이었다. 이제 한국 축구가 정도를 걷기 시작하고 있다. 일찌감치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시작하고 대학 졸업장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프로에 뛰어드는 세대들이 계속 늘어갈 때, 이번 대회에서의 신선한 플레이를 축구팬들은 자주자주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젠 K리그도 슬슬 재밌어지겠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