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분토론을 정말 잘 보았습니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나도는 디워 및 진중권씨 발언에 대한 게시물 및 그에 달린 리플에 담긴 내용들에서 디워가 의심받고 있는 부분들은 사실 어제 백분토론에서 거의 다 해명이 되어 나온 것들이 대다수인데 아직도 이렇게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디워 스토리의 황당함보다 더 황당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어제 백분토론 제대로 보고 글을 남기는 분들이 상당히 적은 것 같습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부담없이 볼 수 있게 하고자 심 감독이 D-War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도 볼 수 있게끔 고려해서 만든 영화인데 이런 영화에서조차 스토리를 운운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따끔한 지적을 해 드리자면, 그런 생각이라면 애당초 이렇게 온라인 상에서 쏟아져 나오는 디워 비평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으시면 됩니다. 디워의 스토리를 가지고 운운하는 것은 디워 영화 하나에만 국한된 지적이 아니라 현존하는 다른 영화,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져 나올 영화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함이 1차적인 목적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네티즌들의 식견 못지 않게 소수 비평가의 쓴소리 역시 영화계 발전을 위해 주목받아야 한다는 것을 진중권 씨가 소리 높여 외친 건데 비평하는 태도나 방식이 글러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안타깝게도 그의 목소리가 가치절하 평가받고 있는 게 개인적으로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진중권 씨가 거친 발언을 일삼아 많은 반감을 사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냉정하게 평가를 하고자 하는 그 근본적인 의도 자체는 전혀 문제삼을 게 못 됩니다. 그가 자신의 식견을 표현하는 방식과 태도만을 자꾸 문제삼아 보다 보면 말 속에 담긴 진정한 뜻을 우리가 놓치기 쉽습니다. 심지어는 진중권 씨의 디워 비평의 본질적 성격마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는데 솔직히 말해서 갖다 붙이면 다 되는 게 말이라고 생각하는 지라 저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토로하는(어제는 좀 흥분했지만...) 진중권 씨의 의견에 좀 더 무게추가 기울어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따지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누구의 말대로 자기가 봐서 재미있으면 그걸로 됩니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에 대해 냉정히 비판하는 건 네티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것과는 별개의 시각으로 본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고 비평가들이 판단하고 시나리오를 걸고 넘어지는 겁니다. 객관적으로 따져 봐서 아닌 건 아닌 것이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비평은 당연하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게 좀 도를 지나쳐 네티즌을 우매한 무리들로 도맷금으로 치부해버린 듯한 이송희일 씨의 거침없는 디워 까내리기 식 블로그 포스트가 결정적인 도화선이 된 것이죠. 그러나 지금 보면 네티즌들은 진중권 씨 주장의 '뼈'를 심판하기보다는 토론 내내 보여주었던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에 대해서만 곁다리를 짚고 넘어가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영화이든지 시나리오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극작술의 기본기가 디워에는 크게 부재되어 있다고 진중권 씨가 주장했습니다. 사건의 인과 관계를 발생하게 하는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당위성 여부와 주인공이 작품 내에서 가지는 존재감이란게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것이죠. 백분토론 있기 전에 네티즌들끼리도 스토리의 허술함에 대해 논의가 오고 가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 중간중간 편집된 듯한 느낌을 주는 사건과 사건 간의 개연성 부재에 대한 비판이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진중권 씨는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본 겁니다. 여기까지만 따져 보아도 역시나 전문 비평가의 눈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것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옹호론 진영의 단발머리의 여성 패널 한 사람이 시나리오 부재에 대해 진중권 씨와 맞장을 한 번 뜨려다가 논리적인 그의 식견 앞에 결국 호되게 당했습니다. ^^;;
글로 밥먹고 사는 사람한테 일반인이 말빨, 글빨로 당해내기는 쉽지 않으니까 전문가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통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반(反)진중권 진영의 네티즌들 분명 많을 겁니다. 그러나 토론 끝내면서 패널들 모두 각각 앞으로 디워 및 한국 영화가 걸어나가야 할 생산적인 방향에 대해 의견을 조금씩 말했는데 여기서 진중권 씨 역시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해 진정으로 걱정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 감독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최종 도착점은 헐리우드 공략이긴 하나 이는 충무로 뿐만 아니라 해외 선진 영화판에서도 투자를 유치하기가 힘든 프로젝트이니 이번 디워의 흥행을 통해 비평가들의 냉정한 비평에 그도 귀를 기울이면서 모험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열정은 잃지 않되 이제는 현실적으로도 가능한 흥행 모델을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추구해 나가는 것이 올바르다라고 말이죠.
비평가들이 스토리 부분에 대해서 디워를 냉정하게 평가를 합니다. CG를 제외하면 전혀 별볼일 없는 영화가 된다고 하죠. 저도 처음에는 디워 옹호론 쪽에 가까웠습니다. 시나리오에 공들이는 것보다 지금 디워를 통해 드러난 CG 기술력을 양성하는 데 드는 인적, 물적, 시간적인 노력이 훨씬 더 고된 것일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와 CG... 어찌보면 인문계와 이공계를 대표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인문계는 뜬 구름 잡는 학문이라 하죠. 갖다 붙이면 말 다 된다고도 하고 일단은 수학처럼 정답이란 게 없고 모범 답안만이 있는 학문입니다. 시나리오야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적인 작가 하나 건져내면 그만일 수 있겠지만 CG 기술력이란 건 보장된 인프라 환경에서 장시간의 투자를 통해 육성된 인재들을 통해서만이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분야입니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선사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닙니다. 지금 디워가 네티즌들로부터 크게 인정받는 이유가 그렇게 완성된 CG 기술력의 값어치를 인정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러한 CG 기술력이 극심한 시나리오의 부재라는 핸디캡을 충분히 상쇄하고 극복하고도 남을만한 요소로 작용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비평가들은 유난히도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시나리오를 자꾸 문제삼는 이유는 앞으로 계속 만들어져 나올 영화들이 CG 기술력으로 이미지가 크게 업된 디워의 흥행을 거울 삼아 일단 스토리는 부실하더라도 볼거리부터 확실히 제공하고 보면 된다는 상업주의 일변도로 퇴색되어 갈 것임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디워의 흥행을 끝까지 지켜보지도 못한 마당에 너무 앞서가며 오버하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뭐 이건 냉철한 비평가들의 직업 의식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만한 반응이라고 저는 예상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봅니다. 네티즌들의 영화 보는 식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비평가나 네티즌이나 그들의 눈높이를 잴 만한 적절한 기준점을 찾기 힘든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전문 지식으로 무장했다고 해서 비평가들만이 네티즌들보다 더 냉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내린다고 쉽게 속단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간에 누구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에 앞서 디워의 흥행 현상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까칠하다기 보다는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대단히 생산적인 작업이라고 봅니다.
아직 디워를 보지 못했습니다만... 진중권 씨 때문에 안 보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절대로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
그가 어제 토론에서 보여준 태도는 분명 비평가적 자질을 의심받아야 할만큼 잘못된 부분이 많았고 그가 디워 비평에서 보여준 냉철한 태도 그대로 네티즌들에게 전이되어 그러한 시선으로 그에게 가해졌음 하는 바입니다만, 그것 때문에 진중권 씨의 비평에 담긴 속뜻이나 그의 바램이 쉽게 묻혀지진 않았음 하는 바입니다.